대법을 실증한 사진전

박해 14년 ‘고요한 항의’

眞 善 忍 2013. 8. 5. 23:08

박해 14년 ‘고요한 항의’

2013.07.21 19:45 등록

지난 18일 파룬궁 박해 14주년 행사가 미국 워싱턴 DC에서 개최됐다. 사진은 내셔널 몰 (National Mall) 촛불 집회 장면. (사진=다이빙 기자)

 

 

박해에 ‘인내’로 대응

 

중국에서는 매일 수 백 건의 소요사건이 발생하고 있다. 그 중 많은 경우는 폭력을 동반한다. 중국 당국은 군사력의 현대화보다 무장경찰과 물리력을 동원해 항의 민중을 제압하는 데에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한다.  

 

물리적 충돌이 만연한 중국에서 폭언이나 폭동 없이 폭력으로 발전하지 않는 한 단체의 행보가 시선을 끈다.

 

중국 내 수 천만 명의 파룬따파(파룬궁) 수련자들은 1999년 이래 14년간 박해를 받고 있다. 이들은 긴 시간 동안 박해자에 대해 한번도 폭력으로 대응하지 않았다.

 

파룬따파에 대한 박해는 1999년 7월 20일 시작됐다. 당시 최고 지도자 장쩌민은 이 수련단체를 뿌리 뽑도록 명령했다.

 

즉시 전 세계 언론은 20세기 초 중국 지배체제의 종식을 야기한 백련교에 빗대어 기공단체의 폭력성을 조명하는 보도를 내보내 중국공산당(이하 중공)의 박해를 대변했다. 중공은 세계 언론에 이 같은 선전을 주입해 박해를 정당화했다. 박해 원인을 조작하는 유혹은 오늘날까지 계속되고 있다.

 

파룬따파가 박해받는 사실을 잘 아는 사람들은 대부분 파룬따파 수련자들이 중국 정부를 ‘반대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박해가 시작된 직후 며칠 동안 수십만 명의 수련자가 베이징으로 모여 들었다. 이들은 중공을 반대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파룬따파가 자신들의 건강을 얼마나 개선했는지, 도덕 수준을 얼마나 향상시켰는지, 삶의 목적과 안정을 가져다 주었는지를 정부 관리에게 알려주기 위해서였다.

 

당시 수련자들은 중공 지도자들이 파룬따파에 대한 잘못된 정보로 인해 참혹한 실수를 한 것으로 생각했다. 그들은 현장에서 조용히 자신의 뜻을 전하며 이성적이고도 평화롭게 행동했다.

 

이후 2년 동안 전국 각지에서 매일 수 백 명의 수련자가 톈안먼광장을 찾아 명상을 하거나 ‘파룬따파는 좋습니다(法輪大法好)’라고 쓰인 현수막을 펼쳤다. 이들은 당 지도자가 잘못된 결정을 바꾸길 간절히 바라며 체포와 고문의 위험을  무릅쓴 채 톈안먼으로 향했다. 그리고 자신들을 파괴하려는 지도자들에게 선량하게 대응했다.

 

양심의 선택 ‘탈당’


중공은 모든 언론과 국가 기구를 동원, 파룬따파에 대한 오도를 퍼부었다. 2년 후 텐안먼광장으로 향하던 발걸음은 멈췄다. 수련자들이 매일 체포 당해도 자신들을 박해하는 중공을 바꿀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됐기 때문이었다. 대신 이들은 자신의 친척, 이웃, 학우, 회사 동료들을 접촉하기 시작했다. 파룬따파 수련자들은 중공의 거짓 말에 세뇌된 중국인들의 생각을 바로잡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수련자들은 한번 더 위험을 감수해야 했다. 수련자들은 전단지와 작은 책자를 인쇄하고 CD를 만들어 주변에 나누어 주기 시작했다. 그 자료들에는 파룬따파가 무엇이고, 당국 선전의 거짓을 폭로하고, 박해받는 수련자의 고통을 설명하는 내용이 주를 이뤘다.

 

2004년 대기원시보는 사설 ‘9평 공산당’을 책으로 내놓았다. 이 책은 중공이 저지른 범죄의 역사를 여과 없이 보여주었고, 공산당의 본질(속성과 왜 그 같은 방식으로 행동하는지에 대한)을 명확히 설명하고 있다. 

 

‘9평 공산당’의 맺음말은 다음과 같다.


‘중국공산당이 없어져야만 비로소 새로운 중국이 있을 수 있다! 중국공산당이 없어져야만 중국에는 비로소 희망이 있다! 중국 공산당이 없어진다면 정의롭고 선량한 중국 인민들은 반드시 찬란한 역사를 다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중국의 파룬따파 수련자들은 ‘9평 공산당’을 사람들에게 나눠 주며 중공과 유관 조직(공청단, 소선대)에서 탈퇴할 것을 권유했다. 공산당 탈당 성명은 가명도 가능했다. 성명의 취지는 공개적으로 당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양심에 따른 결심을 뜻했다.

 

이렇게 당과 사회적 관계를 끊음으로써 중국인들은 중공이 행한 엄청난 악행을 인식하고, 사악함으로부터 자신을 분리할 수 있었다. 탈당은 중국인이 도덕적인 삶을 선택하게 했다. 지금까지 1억 4000여만 명의 중국인들이 당과 결별을 선언했다.

 

이념의 전쟁

 

1999년 4월 25일 밤 중공 지도자들이 돌려 본 편지에서 장쩌민은 파룬따파는 ‘일종의 국가 조직’이라고 서술했다. 당시 중공 관리들은 7000만 명이 파룬따파를 수련한다고 집계(예상)했다.

 

중공은 역사상 어떤 단체도 당으로부터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을 용인하지 않았다. 당이 조종하지 않는 단체를 억제하는 요소가 공산당의 DNA에 들어 있다.

 

이로써 볼 때 1999년 7월 20일이든 다른 어느 날이든 파룬따파에 대한 박해는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장쩌민 입장에서는 박해를 정당화할 이유가 필요했다. 그는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우리는 관리들을 교육해야 하고 사회, 생명, 그리고 가치들에 대한 바른 통찰력을 가진 사람을 가까이 해야 한다. 막시즘, 유물론, 그리고 무신론으로 무장한 우리 공산당원들이 파룬따파와의 전쟁에서 승리하지 못할 이유가 있는가?”

 

장쩌민은 이미 공산당과 파룬따파와의 이념 전쟁을 염두하고 있었다. 그는 중국인이 중공의 유물론과 무신론 대신 파룬따파의 가르침을 선택할까봐 두려워했다.

 

중공 지도자들의 마음을 돌려 보려는 노력에서 시작한 파룬따파 수련자들의 활동은 파룬따파와 박해에 대한 진실을 중국인들에게 알려 주었으며, 나아가 중공을 해체하는 평화로운 방안을 찾아주었다.   

 

이 과정 중에도 수련자에게는 통일된 일관성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파룬따파의 원리인 진(眞)·선(善)·인(忍)에 따른 삶이다. 그들은 폭력과 증오를 관용으로 응대해왔다.

 

영문 : http://www.theepochtimes.com/n3/protesting-14-years-of-persecution/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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