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가이자 파룬궁 수련생인 미국의 스텔링 캠프벨이 2001년 SOS 도보행진의 일환으로 중국 천안문 광장에 다녀오다

음악가이자 파룬궁 수련생인 미국의 스텔링 캠프벨이 2001년 SOS 도보행진의 일환으로 중국 천안문 광장에 다녀오다
2002년 2월 FoFG(Friends of Falun Gong 파룬궁의 친구들: 중국의 파룬궁 박해를 중단시키고 파룬궁을 후원하기 위해 설립된 미국의 비영리 단체)측에서 파룬궁 박해를 종식시키기 위하여 평화적인 청원을 하러 중국 천안문 광장에 다녀온 미국 뉴욕에 거주하는 파룬궁 수련생이자 드럼 연주자인 스텔링 캠프벨(Sterling Campbell)씨와 인터뷰를 했다.
Q : 처음에 어떻게 중국에 가기로 결심했습니까?
A : 처음에 약 20명이 모여 의견을 모았습니다. 제가 한 부부에게 이 문제를 꺼냈습니다. 저는 중국 천안문 광장에 가서 청원을 하고는 싶었지만 그곳에 가서 어떻게 해야 할지 아주 막연했습니다. 영어를 할 줄 모르는 사람들에게 제가 어떤 식으로 파룬궁에 대한 진실을 말할 수 있겠습니까?
Q: 중국 천안문 광장이 어떤 상황이라는 것에 대한 사전 인식이 있었는지요?
A : 저는 상황이 좋지 않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제 경험에서 터득한 제가 해야 할 것은 반드시 해야 한다는 인식으로 그 문제에 접근했습니다. 사람들은 흔히 “그것이 내가 이해한 것입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인식이 반드시 당신의 인식과 똑같을 수는 없습니다. 길은 당신자신이 걷는 것입니다. 당신은 다른 사람들의 경험을 반드시 비교할 필요는 없습니다. 저는 다른 사람들의 자극을 받기는 했지만 이번 천안문 광장 청원이야말로 제 자신의 진정한 수련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인식하자 두려움이 제 마음속에서 사라지고 중국 천안문 광장으로 청원하러 가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Q: 베이징에서 동료 수련생들과 함께 있었습니까?
A: 저희들 일행은 8명이었는데 주로 뉴욕에 사는 수련생들이었고 브라질 수련생도 1명 있었습니다. 때때로 긴장감이 맴돌았습니다.
Q: 왜 그랬습니까?
A: 우리들은 이런 경험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하여 의견이 달랐습니다. 베이징의 분위기가 삼엄하여 우리들은 입을 다물고 있었습니다. 누군가 우리를 검문할 때 우리들이 파룬궁 자료를 가지고 있는 것이 목격되면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에 우리들은 호텔에서도 조심해야 했습니다. 우리들은 중국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감시당하고 미행당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Q: 청원하던 날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A: 그날 저희들은 자연스럽게 보이도록 몇 개 그룹으로 나누어 천안문 광장에 갔습니다. 어느 그룹은 걸어갔고 다른 그룹은 기차를 타고 갔습니다. 저의 그룹 3명은 걸어서 갔는데 약 10분정도 걸렸습니다.
천안문 광장에 가기 전에 우리는 서양인이 혼자 있는 것을 발견했는데 그가 파룬궁 수련생이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에게 접근하여 알아보니 역시 파룬궁 수련생이었습니다. 그가 합류하여 우리 4명은 일본식 다례의식이 행해지고 있는 곳에 가기도 하고 커다란 요요를 가지고 놀기도 하면서 주변을 좀 살펴보았습니다. 저는 미국에 있을 때 우연히 요요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요요를 하는 법을 알고 있었습니다. 우리들은 관광객들처럼 자금성 주변을 걸었습니다.
자금성에서 천안문 광장으로 가려면 지하도 같은 터널을 통과해야 했습니다. 우리가 계단위로 올라오자 10명의 중국 경찰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서양인들을 매우 수상히 여겼습니다.
저는 마음의 동요 없이 차분한 심태를 유지했습니다. 저는 속으로 “나는 옳은 일을 하고 있다. 나는 이곳에 진실을 말하기 위해서 왔고 그것은 정당한 일이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곧바로 경찰들을 지나쳐 갔고 함께 간 다른 3명도 저와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우리가 천안문에서 나오는 거리를 가로질러 계단에 올라섰을 때 한 경찰이 저에게 신분증을 요구했습니다. 이때 마침 여러분들께서 알고계시는 인기스타가 총출연하는 영화 “나바론 요새(Guns of Navarrone)”의 한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참으로 기상천외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저는 제 신분을 밝힐 일이 없었기 때문에 호텔에 신분증을 놓고 왔습니다. 신분증을 소지한 다른 한 수련생은 즉시 공항으로 보내졌고 경찰은 그 수련생이 자기 물건을 가지러 호텔에 가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그 수련생은 약 3500달러 상당의 전자제품 및 개인 소지품을 빼앗겼습니다. 저는 그 경찰에게 “미안합니다. 신분증을 가져오지 못했습니다. 나는 늦었습니다. 가야만 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냉정함을 유지하기 위해 저는 계속 긍정적이고 올바른 생각을 했습니다. 마음에 약간씩 파동이 일 때마다 저는 저의 본연의 목적을 되새겨 마음을 가라앉힐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거리를 가로질러 천안문 광장에 도착했습니다. 저는 체포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도망칠 수 있었으니까요. 우리가 걸어서 45m 정도 걸어갔을 때 우리 일행 중 한 명이 가방에 파룬궁 책을 가지고 있어서 우리의 신분이 노출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모두가 만나기로 되어 있는 광장 중앙까지 가지 못했습니다.
물론 당신은 일이 발생한 후에야 어떻게 해야 될지를 알게 됩니다. 그 당시에 저는 우리 일행들과 협력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래서 도망치지 않았습니다. 경찰들은 우리를 경찰승합차에 싣고서 거리를 가로질러 경찰서로 갔습니다. 그들은 우리를 붙들고 차에서 끌어내 경찰서에 감금시켰습니다.
Q: 경찰서에서 무슨 일이 발생했습니까?
A: 경찰들은 우리 일행을 복도로 끌고 가서 몸을 수색하고 소지품을 검사했습니다. 결국 경찰들은 우리가 전날 밤에 파룬궁에 대한 진상을 알리기 위해 만든 중국어 소책자를 발견했습니다. 사실, 우리는 이 소책자를 천안문광장 중앙에 가서 공중에 뿌려 사람들에게 파룬궁에 대한 진상을 알리려고 계획했었습니다. 우리 일행 중 일부는 경찰차에 강제로 끌려들어가기 전에 소책자 몇 권을 사람들에게 던져주었고 그들이 줍는 것을 보았습니다.
우리는 각각 서로 다른 방으로 끌려갔습니다. 우리가 저항하면 경찰들은 무력을 행사했습니다. 그들은 사람들의 머리, 팔, 옷 등을 잡고 끌고 갔습니다. 그들은 사람들에게 주먹질을 하고 발로 차는 것은 예사이고 사람들이 바닥에 쓰러졌을 때조차도 발로 차고 얼굴을 마구 때렸습니다. 사람들은 고통스러워 비명을 질렀습니다.
우리 일행은 경찰들에게 “당신들은 나쁜 짓을 하고 있습니다. 도대체 왜 이런 짓을 하는 것입니까? 당신들도 파룬궁이 좋다는 것을 알고 있지 않습니까?”라고 말하면서 대항했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우리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입 닥치시오!” 하면서 계속했습니다. 우리는 계속하여 항의했습니다. 그들은 우리의 신분에 대해 질문하고 신분증을 요구하면서 우리를 심문하려고 했습니다. 저는 신분증이 있는 장소를 그들에게 말하기를 거부했습니다.
그들은 저에게 앉으라고 했습니다. 그 순간 저는 그들에게 더 이상 협조하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나는 앉고 싶지 않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제 다리를 걷어차고 마구 구타하면서 저를 바닥으로 던졌습니다. 저는 가부좌를 하고 바닥에 잠시 앉아 있었습니다. 그런 후에 일어서서 의자를 잡고 스스로 앉았습니다.
그 순간 저는 화도 나지 않았고 두려움도 없었으며 그들에 대한 증오심도 없었습니다. 저는 오로지 그들에게 그들이 하고 있는 일이 옳지 않다는 것과 그들의 파룬궁에 대한 태도를 바꿔야 한다는 것을 말해주고 싶었습니다.
그들은 우리를 학대하면서 마치 영화 “디어 헌터(Deer Hunter)"의 한 장면처럼 우리를 비웃고 조롱했습니다. 저는 그런 모욕을 전에 당해본 적이 결코 없었습니다. 저는 “그들은 나를 해치지 못한다.”라는 생각이 들며 누군가 저를 보호해 주고 있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동시에 분위기가 구역질나게 했고 아이러니하게도 우스우면서도 침울했습니다. 그런 일이 저에게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결국 그들은 우리들 10여 명을 강제로 버스에 태워 약 1시간 정도 거리의 호텔 같아 보이는 곳으로 데려갔습니다. 우리 일행 중 일부는 다른 사람들보다 더 심하게 저항했는데 저항할수록 경찰들은 더 잔인해졌습니다.
무릎을 굽히지 않고 다리를 앞으로 곧게 쭉쭉 펴고 걷는 군인들이 대형을 지어 버스 안으로 들어와 우리를 유리창에서 떼어놓아 우리는 유리창을 열고 소리를 칠 수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아이들 같이 어려 보였고 일부는 17세에서 20세 정도 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앞에서 말씀드린 호텔 같아 보이는 곳으로 왔는데 그곳은 일종의 대기소였습니다. 그들은 저를 발로 차서 버스에서 내리게 했습니다. 제가 버스에서 발을 내딛는 순간 그들이 발로 제 등을 차서 밀어버린 것입니다. 저는 저항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일어서서 그 대기소로 걸어 들어갔습니다. 저는 “내가 왜 여기에 있어야 하지?” 라고 생각했습니다. 우리들 각각에게 1명의 심문자와 우리를 따라다니며 감시하는 2명의 경찰이 배당되었습니다. 저는 심문자에게 옳지 못한 일을 하고 있다고 계속 이야기 했으나 그는 제 말을 무시했습니다. 제 생각으로는 그들은 생명에 대하여 아예 무시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들은 샌프란시스코에서 온 또 다른 여자 수련생을 방으로 끌고 왔습니다. 그녀는 중국계 미국인이었습니다. 그녀는 그들에게 전혀 협조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들이 그녀를 심하게 구타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그녀를 잡아채었고 그녀는 “나를 보내 주십시오!”라고 소리쳤습니다.
그들은 그녀를 바닥위로 끌고 갔고 3-4명의 경찰들이 주먹과 손바닥으로 얼굴을 때렸습니다. 그들은 그녀를 발로 차며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들이 멈추자 그녀는 일어서서 그들은 바라보고는 “당신들이 하고 있는 일은 옳지 못한 일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몇 번씩이나 구타했지만 그녀는 결코 굽히지 않았습니다.
그런 후 한 동안 방안이 조용했기 때문에 저는 ‘그 심문자가 좀 잠잠해졌구나!’라고 생각했고 그는 TV를 켰습니다. 그는 채널을 음악이 나오는 방송국으로 돌렸습니다. 우연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묘하게도 마침 그때 폴 매카트니의 “자유(Freedom)”이라는 노래가 중국어 자막과 함께 흘러 나왔습니다. 저는 가부좌를 풀고 “저걸 보세요. 저 가사를 읽어 보세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제 말을 무시했습니다.
그 다음으로 앨리샤 키예스의 “여자의 자유(A Woman's Worth)”라는 곡이 흘러나왔는데 몇 분전에 그들이 여자 수련생을 박해한 것을 생각해 볼 때 참으로 아이러니 했습니다. 그러나 그 심문자는 이 어느 것에도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저는 그 방 밖으로 강제로 끌려나와 다른 수련생들이 있는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그 방에는 담배연기가 자욱했습니다. 창문도 없이 담배연기만 자욱한 곳에 우리들을 가두는 것으로 보아 그들은 우리를 지치게 하기 위해서 다양한 심리전술을 사용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 방은 매우 불편했습니다. 또 다른 심문자가 들어왔는데 그는 친절한 어투로 영어를 매우 잘 했습니다. 우리 모두는 그와 대화를 했고 합리적으로 증거를 제시하여 계속 그를 압도했습니다. 그의 바르지 못한 하나하나의 주장에 대해 우리는 올바른 답변을 했습니다.
여러분은 경찰들과 마치 친구 사이처럼 대화할 수 있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파룬궁에 대하여 이야기하지 않는다면 문제가 전혀 일어나지 않습니다. 일단 여러분이 파룬궁 및 파룬궁 탄압 문제만 제기하면 그들은 안색이 변하고 무조건 대화를 차단합니다.
여러분은 중국 사람들이 얼마나 통제되었는지를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들은 사고방식까지 통제되었고 중국공산당과 사고방식이 다르면 그 결과는 아주 무섭습니다. 저는 중국 경찰들로부터 이런 사실을 배웠습니다. 공산당 노선에 반대하는 어떤 발언도 법에 위반되는 것입니다. 파룬궁 수련생에게 친절을 베푸는 경찰이 있다면 그가 누구이든지를 막론하고 그는 위험에 처하게 됩니다.
Q: 당신 자신이 그런 경험을 해보셨나요?
A: 제가 직접 경험을 한 것은 아니고 그런 경험을 한 다른 수련생과 제가 대화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모든 경찰들은 휴대폰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한가할 때마다 휴대폰으로 자기 여자친구들과 통화를 합니다. 다음은 중국에서의 모든 일이 끝난 후 어느 수련생이 저에게 해준 이야기 입니다. 그 수련생이 한 번은 경찰들과 함께 차에 타게 되었는데 앞에 경찰 두 명이 타고 뒤에 그와 경찰 2명이 탔습니다. 그는 그들 2명 사이에 앉았는데 그 중 젊어 보이는 한 명이 그 수련생에게 친절을 베풀어 주는 것 같았습니다.
그 수련생은 젊은 경찰과 대화도 나누었는데 알고 보니 나이가 22살이었습니다. 그 경찰은 휴대폰 버튼을 누르기 시작했습니다. 그 수련생은 그가 무었을 하는지 몰랐습니다. 잠시 후 그 경찰은 수련생 옆구리를 쿡 찔러 자기 휴대폰을 보라고 했습니다. 휴대폰에는 “나는 당신들 말을 신뢰합니다.” 라는 문자가 적혀있었습니다.
그 수련생은 깜짝 놀랐습니다. 그 경찰은 이어서 휴대폰에 다음과 같은 문자를 입력시켰습니다. “장쩌민은 나쁜 사람입니다. 제 형도 파룬궁 수련생입니다. 앞에 탄 경찰들을 믿지 마세요. 그들은 나쁜 사람들입니다.”
Q: 그 경찰은 참으로 난처하겠군요. 이런 끔찍한 환경에서 그 경찰 및 그와 비슷한 입장에 처한 다른 경찰들은 처신하기가 얼마나 어려울까요?
A: 그렇습니다. 여러분들께서는 경찰들 중 일부는 자신들이 저지르고 있는 파룬궁 수련생에 대한 박해를 진정으로 원하지 않는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들의 내면에는 선한 일면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파룬궁 수련생들에게 선하게 대하는 것이 목격되면 그 사실이 상부에 보고 되어 그들의 인생 모든 것이 끝나는 위험한 상황에 처하게 되기 때문에 그들도 어쩔 수 없이 마음에 내키지 않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다른 한 수련생은 저에게 그들 일행이 호텔에서 온 짐을 돌려받았을 때 자기가 소중히 여기는 것을 호텔에 놓고 온 사실이 생각난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것을 반드시 되찾으려고 자기 심문을 담당한 경찰에게 도움을 청했습니다.
Q: 그것이 무엇이었습니까?
A: 모든 파룬궁 수련생들이 읽는 전법륜(轉法輪: Zhuan Falun)이라는 책입니다. 그 수련생은 그 책을 화장실 뒤에 숨겨놓았다가 급하게 나오느라고 깜빡 잊었던 것입니다. 그는 그 책이 물에 젖지 않기를 바라면서 그 경찰에게 책을 가지러 호텔에 돌아가게 해 달라고 간청을 했습니다.
Q: 그 경찰은 그를 호텔로 데려갔습니까?
A: 그 경찰은 자기에게는 매우 위험한 문제이었기 때문에 잠시 망설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수련생을 호텔로 데려갔습니다.
Q: 당신도 호텔로 당신 물건을 가지러 돌아갔습니까?
A: 물론입니다. 경찰이 제 호텔 열쇠를 가지고 있었는데 제가 신분증을 보관한 곳을 밝히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이 제 신분증을 찾는데 40분이나 걸렸습니다. 결국 그들은 가장 쉬운 곳 즉, 제 방 금고에서 찾아냈습니다. 몇몇 수련생들도 물건을 가지러 다른 차를 타고 호텔에 왔는데 한 번에 한 명씩 들어왔습니다. 경찰들은 우리 호텔을 여러 번이나 바꿨습니다.
마지막 호텔에서 떠날 때 우리들은 “이제 공항으로 가겠구나!”라고 생각했는데 그들은 우리를 다시 그 대기소의 다른 방으로 데려갔습니다. 근무교대를 한 다른 경찰들이 들어왔을 때 우리 일행은 2시간동안 책을 읽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이따금씩 우리를 혼란시키기 위해서 “입 닥치시오!”하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저는 ‘그들이 오로지 저렇게 하다 말겠지’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날 밤 우리 모두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습니다.
다음 날 그들은 X-레이 탐지기로 우리들의 모든 물건과 의류 등을 검사했습니다. 감시인들은 계속 우리를 협박하려고 했습니다. 그들은 우리를 경찰승합차에 타게 했다가 다시 “내리시오!”하고 고함을 쳤습니다. 그들은 몇 번씩이나 반복하여 우리를 괴롭혔습니다.
심하게 구타를 당한 샌프란시스코 수련생과 저는 다른 수련생들이 강제로 경찰승합차에 끌려 들어가고, 여기저기 질질 끌려 다니고 그리고 구타당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제 휴대폰과 집 열쇠를 빼앗아 갔습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그 여자 수련생과 저는 몇 시간 동안이나 그 대기소에서 갇혀있었습니다. 마침내 그들은 우리 모두를 공항으로 데려갔습니다.
이렇게 미국으로 돌아오게 되어 기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