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평 중 첫째】공산당이란 무엇인가 2004-12-12 오후 10:59:22 | |||||
1840년은 역사학계에서 인정하는 중국 근대사의 시작인 동시에 중국이 중세에서 현대로 가는 기점이기도 하다. 그때부터 시작하여 중국 문명은 대략 4차례의 큰 도전을 거쳤다. 앞의 세 차례 도전을 차례대로 살펴보면, 1860년 영불(英佛) 연합군의 베이징 공격, 1894년 중일(中日)전쟁과 1906년 중국 동북지방에서 발생한 러일전쟁으로 형성된 도전이었다. 한편 중국은 이런 도전에 대하여 서양문화를 끌어들이고(양무운동), 제도를 개량하였으며(무술변법)과 대청입헌, 이후 신해혁명을 일으키는 등으로 반응하였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전쟁 승리국 중 하나인 중국의 이익은 열강들이 삼켜버렸다. 당시에 수많은 중국인들은 앞의 세 반응이 모두 실패하였다고 인정하였다. 그리하여 5.4운동이 나타났고 이로부터 네 번째의 파동이 일어났는데 또한 최후의 반응이기도 했다. 이를 통해 중국에서는 문화적으로 전면적인 서양화가 진행되었고 뒤이어 공산주의 운동이라는 극단적인 혁명이 시작되었다. 이 글에서 주목하는 것은 중국 최후의 파동에 대한 반응의 결과물인 공산주의 운동과 공산당이다. 우리는 이 글에서 160여 년간 1억에 가까운 사람이 비정상적으로 사망하고 거의 모든 중국의 전통문화와 문명을 대가로 치른 것에 대해 분석해보고자 한다. 또한 중국이 선택한 것 혹은 외부에서 중국에 강제로 주입한 것이 어떠했는가를 분석해 보고자 한다. 폭력테러로 정권을 탈취하고 정권을 유지 “공산주의자들은 자신의 견해와 의도를 감추는 것을 경멸받을 일로 여긴다. 공산주의자들은 자신들의 목적이 현존하는 모든 사회 질서를 폭력적으로 타도함으로써만 이루어질 수 있다고 공공연하게 선언한다.” 『공산당 선언』의 마지막 결말은 이와 같다. 폭력은 공산당이 정권을 탈취한 수단이자 또 가장 주요한 수단이었다. 이것은 공산당이 탄생하던 그날부터 결정된 첫 번째 유전자였다. 세계적으로 최초의 공산당은 사실상 마르크스가 죽은 후 여러 해가 지나서야 비로소 나타났다. 1917년 10월혁명 이듬해, 소련 공산당이 정식으로 탄생하였다. 이 공산당은 ‘계급의 적들’에게 폭력을 실행하는 과정 중에 생겨났으며 동시에 자기편 사람들(즉 반역자)에 대한 폭력을 행사하는 가운데서 생존을 유지하였다. 소련 공산당은 내부 숙청 중에서 2천여만 명을 간첩, 반역자 및 의견이 다른 사람으로 몰아 학살하였다. 중국 공산당의 성립은 바로 소련 공산당이 통제하는 제3공산주의 인터내셔널(The Third Communist International)의 한 지부였으며 자연히 이런 폭력 전통을 계승하였다. 1927년부터 1936년에 이르는 이른바 첫 번째 국공(國共) 내전시기에 장시(江西)성의 인구가 2천여만에서 천여만으로 줄었으니 공산당 폭력의 심각한 재난을 가히 상상할 수 있다. 만약 정권을 탈취하기 위한 전쟁과정에서 폭력이 불가항력적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공산당처럼 이렇게 평화적인 시기에도 여전히 폭력 정치를 사용하는 정권은 세계에 둘도 없을 것이다. 중국이 공산화 된 1949년 이후 중국 공산당의 폭력에 상해(傷害)를 입은 중국인들의 숫자는 놀랍게도 그 이전 30년의 전쟁시기를 훨씬 능가한다. 중국 공산당이 폭력을 사용한 가장 좋은 예는 중공이 전력을 다해 지원한 캄보디아 크메르루주(Khmer Rouge)를 들 수 있다. 그들은 정권을 탈취한 후 전 인구의 4분의 1을 학살하였다. 여기에는 대다수의 화교들이 포함되었다. 뿐만 아니라 중공은 지금까지도 크메르루주에 대한 국제사회의 공개적인 심판을 가로막고 있는데, 그들의 목적은 당연히 중국 공산당이 그 가운데서 일으킨 작용과 그들이 담당한 악랄한 역할을 계속 은폐하기 위한 것이다. 여기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세계적으로 가장 잔혹한 무장단체와 정권들은 모두 중국 공산당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다는 점이다. 캄보디아의 크메르루주를 제외하고도 인도네시아 공산당, 필리핀 공산당, 말레이시아 공산당, 월남 공산당, 미얀마 공산당, 라오스 공산당, 네팔 공산당 등등이 있으며 이들 역시 중국 공산당의 지지하에 건립된 것이다. 이들 당의 두목 중 많은 자들은 모두 중국인이며 어떤 자들은 지금도 여전히 중국에 숨어있다. 아울러 세계적으로 마오쩌둥주의를 종지로 하는 공산당에는 남미의 광명대도(Shining Path), 일본의 적군파가 있으며 이들의 잔인하고 폭력적인 행동 역시 모두 세상 사람들이 혐오하는 대상이다. 공산주의 이론 근거 중 하나는 진화론(進化論)이다. 공산당은 종의 경쟁을 사회진화 중의 계급투쟁으로 발전시켰으며, 계급투쟁이야말로 사회발전과 진보의 유일한 원동력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므로 투쟁은 공산당이 정권을 획득하고 생존을 유지하는 주요한 ‘신앙’이다. “8억 인구가 있는데 투쟁하지 않으면 되겠는가?”라는 마오쩌둥의 유명한 말은 바로 이런 생존논리의 표현이다. 이 표현과 마찬가지로 유명한 것이 바로 마오쩌둥의 다른 한 마디 말이다. 즉, 문화대혁명을 “7~8년마다 한번씩 해야 한다.”라는 것이다. 폭력사용을 반복하는 것은 공산당 정권이 통치를 유지하는 중요한 수단이었다. 폭력의 목적은 바로 두려움을 만들어내는 데 있다. 매번의 투쟁운동은 모두 공산당의 한 차례 테러훈련이었으며 인민들이 내심으로부터 공포에 떨며 굴복하도록 하였고 이로부터 테러의 노예로 만들었다. 오늘날, 테러리즘은 문명과 자유세계에 대한 최대의 적으로 변했다. 그러나 공산당의 테러리즘은 국가를 매개체로 하였기에 규모가 더욱 거대하고 지속시간도 길며 끼친 재앙은 더욱 잔혹하였다. 21세기에 들어선 오늘날, 우리는 공산당의 이 유전적인 요소가 적당한 시기가 되면 반드시 공산당의 미래에 결정적인 작용을 일으킨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거짓말을 폭력의 윤활제로 인류 문명을 가늠하는 지표 하나는 제도 중에서 발생되는 폭력 작용의 비례이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공산정권 사회는 의심할 여지 없이 인류 문명의 한 차례 큰 퇴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산당이 어떤 사람들에게는 진보적이라고 간주되어 왔다. 이런 사람들은 폭력을 사용하는 것이 이런 종류의 사회 진보에 반드시 필요하며 또 필연적인 과정이라고 인식한다. “어릴 때부터 우리는 미국이 특별히 친근한 나라라고 느꼈다. 이는 단지 미국이 중국의 토지를 강제로 점령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중국에 대하여 침략적인 전쟁을 발동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우리는 믿는다. 더 근본적으로 말한다면 중국인은 미국에 대하여 호감을 갖고 있는데 이는 미국 국민성에서 풍기는 민주적인 풍격과 넓은 흉금 때문이다.” 이글은 중공 중앙의 기관지인 『신화(新華)일보』가 1947년 7월 4일 발표한 논평이다. 하지만 불과 3년도 안되어 중국은 북한에 군대를 파견하여 미국과 전쟁을 치렀으며 또한 미국인을 세계에서 가장 사악한 제국주의자로 묘사하였다. 중국대륙에서 온 사람이 50여년 전의 이 논평을 본다면 모두 깜짝 놀랄 것이다. 왜냐하면 중국 공산당은 이와 유사한 문장을 어떤 식으로든지 새로 출판하는 것을 엄격히 금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 공산당은 정치권력을 잡은 후 숙반(肅反, 역주:반동분자 숙청), 공사(公私)합영, 반우파 투쟁, 문화대혁명, 6.4학생운동(역주:천안문 민주화 운동), 파룬궁 탄압 등에 매번 동일한 수단을 채용하였다. 그 중 가장 유명한 것은 1957년에 중국 공산당이 지식인들에게 공산당에 대한 의견을 제출하라고 해놓고 그에 따라서 ‘우파’를 체포한 것이다. 사람들이 이런 행동을 음모라고 지적했을 때 마오쩌둥은 공개적으로 “그것은 음모가 아니라 ‘양모(陽謀)’다.”라고 말했다. 거짓과 기만은 공산당이 권력을 탈취하고 권력을 유지하는 과정에서 극히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다. 예로부터 중국 지식인들의 가장 중요한 믿음 중 하나는 바로 역사이다. 중국은 세계적으로 역사가 가장 길고 완전한 나라이다. 중국인들은 역사에 근거하여 현실을 판단하고 심지어 이 가운데서 개인의 정신적인 승화를 얻는다. 그러므로 역사를 속이고 뜯어 고치는 것 역시 중국 공산당의 중요한 통치수단이 되었다. 일찍이 춘추전국시대부터 최근에는 문화대혁명의 역사에 이르기까지 전면적으로 속이고 뜯어 고치고 거짓 논술을 펼쳤는데 50여년 동안 한번도 중단한 적이 없었다. 뿐만 아니라 역사의 본래 모습을 되돌리려는 시도는 모두 무자비하게 봉쇄당했다. 은폐하고 덮어 감출 필요가 있을 때, 폭력으로 이 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할 경우 공산당은 기만과 거짓을 사용한다. 거짓은 폭력의 다른 한 면인 동시에 폭력의 윤활제인 셈이다. 이는 결코 공산당이 발명하고 창조한 것이 아니며 공산당은 단지 원래부터 지니고 있던 불한당과 같은 행실에 아름다운 가면을 씌워 사용했을 뿐이다. 중국 공산당은 농민들에게 토지를 주기로 약속했고, 노동자들에게는 공장을 주겠다고 약속했으며, 지식인들에게는 자유와 민주, 평화를 주겠다고 약속했지만, 지금 어느하나도 실현된 것이 없다. 한 세대의 기만당한 중국인들이 세상을 떠났으며 다른 한 세대의 중국인들은 계속해서 거짓말에 속고 있다. 이는 중국인들의 가장 큰 비애이자 중화 민족의 큰 불행이다. 끊임없이 바뀌는 입장과 원칙 2004년에 있었던 미국 대선 TV토론에서 한 후보가 다음과 같이 말한 적이 있다. “사람이 어떤 문제에 대한 관점을 늘 바꿀 수는 있으나 문제를 보는 원칙을 자주 바꿔서는 안 된다. 만약 원칙이 늘 바뀌는 사람이라면 그는 결코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이 말에는 의미심장한 내포가 담겨있다. 끊임없이 원칙을 바꾸는데 있어서, 공산당은 그 전형적인 사례이다. 중국 공산당을 예로 들면, 당 창립 80년 동안 16차례의 중국 공산당 전국대표대회에서 놀랍게도 당장(黨章)을 16차례나 수정하였다. 아울러 정권을 탈취한 후 50년 동안 중국 헌법을 크게 5차례나 수정하였다. 공산당의 이상은 사회적인 평등이며 결국 공산주의를 실현하는데 있다. 그러나 오늘날, 공산당이 통치하는 중국은 이미 전 세계에서 빈부격차가 가장 심각한 나라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산당원들은 8억 인구의 가난을 기반으로 큰 부를 누리고 있다. 중국 공산당의 사상은 최초의 마르크스주의로 부터 마오쩌둥사상을 합쳤으며 거기에 또 덩샤오핑 이론을 더했고 최후에는 또 장쩌민의 3개 대표이론까지 합하였다. 그 중 마르크스주의와 마오사상, 덩샤오핑 이론과 장쩌민의 3개 대표론은 모두 전혀 다른 이론으로 서로간에 차이가 아주 크다. 하지만 중국 공산당은 이들을 함께 나열하여 숭배하고 있는데 정말 역사적으로 기이한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몇 가지 예를 든다면, 원래 공산당에게는 조국(祖國)이란 것이 존재한 적이 없으며, 전 세계적인 대동단결을 주장하는데 오늘날 중국 공산당은 극단적인 민족주의를 주장하고 있다. 원래 공산당은 모든 사유재산을 박탈하고 일체 착취계급을 타도할 것을 주장하는데, 오늘날 중국 공산당은 도리어 자본가들을 끌어들여 공산당에 입당하게 하는 등, 그들의 기본 원칙은 완전히 휴지조각이 되어 버렸다. 공산당 정권이 출현하고 유지해 온 역사를 보면 어제 견지했던 원칙을 오늘 포기하고, 내일이면 다시 바뀌는 사건들이 수없이 많았다. 그러나 아무리 바뀌더라도 공산당의 목표는 명확한데, 그것은 바로 정권을 탈취하고 정권을 유지하는 것이며 또한 사회 권력을 절대적으로 독점하여 행사하는 것이다. 중국 공산당에게는 역사적으로 십여 차례의 이른바 ‘생사를 건’ 노선투쟁이 있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것은 그들이 입장과 원칙을 바꿀 때 발생한 내부의 혼란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여기에서 우리가 설명할 필요가 있는 것은 바로 매번 입장과 원칙을 바꿀 때마다 중국 공산당의 합법성과 생존에 피할 수 없는 위기가 도래했다는 점이다. 국공(國共)합작, 친미외교, 개혁개방, 민족주의의 추진 등이 모두 이러하였다. 그러나 매 차례의 타협은 모두 권력의 탈취나 혹은 권력을 고수하기 위한 것이었다. 매 번 탄압을 하고 나중에 명예를 회복『平反』시키기를 반복한 일 역시 이로 인해 발생한 것이다. 서양에 이런 속담이 있다. “진리는 견지할 수 있지만 거짓은 영원히 변화한다(Truths are sustainable and liesmutable.)” 이 말은 너무나도 맞는 말이다. 당성(黨性)으로 인성(人性)을 대신하고 인성을 소멸 중국 공산당은 레닌 식의 정당이다. 중국 공산당이 당을 건립한 초기에 당을 건설하는 3대 노선 즉 정치노선, 사상노선과 조직노선을 확립하였다. 이 3대 노선을 알기 쉽게 풀이한다면, 사상노선은 공산당의 철학적 기초이며, 정치노선은 공산당의 목표를 확립한 것으로 나중에 엄격한 조직형식으로 이 목표를 실현한다. 공산당원과 공산주의 사회의 사람들은 절대적으로 복종해야 하는데 이것이 이른바 조직노선의 전체 내용이다. 중국에서, 사람들은 공산당원들에게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이중인격의 특징을 잘 알고 있다. 사적인 장소에서 공산당원들은 한 사람의 아버지로서 혹은 남편으로서 혹은 친구로서 일반인들과 마찬가지로 희로애락(喜怒哀樂)을 느끼며 일반인들과 마찬가지로 장단점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인성(人性)을 능가하는 것이 있으니 바로 공산당이 가장 강조하는 당성(黨性)이다. 당성은 공산당의 요구에 따른다면, 언제까지나 보편적인 인성을 초월하는 위치에 놓여 있다. 그들은 인성은 상대적이고 변하는 것이지만 당성은 절대적이고 의심할 바 없으며 도전해서는 안 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문화대혁명 기간동안 중국인들은 부자(父子)지간에 서로를 죽이고, 부부 사이에도 서로 투쟁했다. 모녀 사이에 서로 고발하고, 사제지간에도 얼굴을 붉히기가 예사였는데, 이는 당성이 일으킨 작용이었다. 초기에 중국 공산당 고위관리의 가족들은 계급의 적으로 분류되어 탄압을 받았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의 가족들을 구해내지 못했는데 이런 사례가 무척 많다. 이 역시 당성이 일으킨 작용이었다. 이러한 당성은 공산당 조직이 장기간의 훈련을 통하여 얻은 결과이다. 이러한 훈련은 유아원부터 시작된다. 유아원 교육에서 공산당이 아이들에게 주는 표준답안은 비록 아이들의 인성에는 부합되지 않지만 좋은 성적을 얻을 수 있는 기준이 된다. 초등학교, 중고등학교 그리고 대학에 이르기까지 정치교육에서 학생들은 반드시 당에서 제시한 표준답안에 따라야 한다고 배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상급학교에 진학하거나 졸업을 할 수 없었다. 당원들은 평소에 어떠한 의견을 말해도 좋지만 일단 당원의 신분으로 태도를 표명할 때에는 반드시 ‘조직’의 의견과 일치해야 한다. 아래에서부터 위에 이르기까지, 방대한 집단으로 구성된 피라미드의 최정상과 의견이 통일되어야 하는 것이 공산당 정권의 가장 중요한 구조적 특징인데, 한마디로 절대 복종해야 한다는 것이다. 오늘날, 중국 공산당은 더 이상 공산주의라는 목표를 추구하지 않으며 이미 자신의 이익만 수호하는 정치집단으로 탈바꿈했다. 그럼에도 공산당 조직의 원칙은 변하지 않았으며 절대 복종해야 한다는 당성의 요구도 변하지 않았다. 이 당은 인류와 인성을 초월하는 방식으로 존재하며, 당 조직 혹은 당 지도자에게 위협이 되는 사람이라면, 일반 백성이건 당의 고위 관리이건 상관없이 즉시 제거해 버린다. 반자연적이며 반인성적인 사악한 영(靈) 천지만물은 모두 생성하고 쇠망(衰亡)하는 생명과정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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